반쪽짜리 암 정밀 의료, 국가 단위 통합 DB 구축 등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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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맞춤 치료제 접근성도 높여야

25년 전 하루 반갑 씩 피던 담배를 끊은 김중앙(가명)씨는 지난 2016년 10월 이하선암(침샘암) 진단(당시 45세)을 받아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4년 뒤 2020년 가을, 암이 재발하면서 뇌와 폐로 전이돼 방사선 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부작용으로 금세 치료를 중단해야 했다. 전이 발견 후 김씨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검사에서 종양변이부담(tumor mutational burden, TMB)이 높다는 점이 발견됐다. NGS 검사 결과와 치료 경과 등 임상 정보, CT 검사 등 영상 정보, 병리 검사 결과를 종합해 2021년 1월부터 면역항암제 투여를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암 덩어리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최근까지도 좋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들지 못해 치료비 부담이 상당한 상황이다.


정밀 의료는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를 통해 유전체 검사 정보, 임상정보, 영상 정보 등 각종 데이터를 종합해 개인별로 가장 적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 정밀 의료의 힘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표준적인 약물치료를 진행했을 때 암 환자 4명 중에 1명만 치료 효과를 보인다. 나머지 환자들에선 큰 효과가 없음에도 부작용을 감수하며 치료가 이뤄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암 치료 영역에서 정밀 의료의 영향력은 그 어떤 질환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실제 정밀 의료가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암은 불치병에서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문제는 정밀 의료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적 환경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암 환자의 정밀 의료 실현에 필수적인 ①임상 유전체 통합 DB(데이터베이스) ②분자종양위원회 ③유전체 기반 맞춤형 치료제 접근성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40년째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를 지키고 있는 암은 진단 단계부터 최선의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첫 치료를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암 환자의 생존과 직결된다. 치료 효과가 좋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암 환자의 유전체 특성을 고려해 정밀하게 진단·치료·관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정밀의료 생태계 구축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2025년 이후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보다 정밀하게 진단하고, 보다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 국민 의료비 지출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밀 의료는 환자의 치료 성적을 중시하는 만큼 환자의 생존율은 높이면서 암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치료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암 환자의 유전자 변이 정보를 파악해 정밀 진단을 돕는 NGS검사의 경우 2017년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 받아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임상 현장에서 유전체 검사 결과 등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정확한 치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NGS 검사 결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의료진은 물론, 유전 정보 분석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유기적인 협력과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분자종양위원회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관에는 분자종양위원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인적 자원과 재정적 지원이 미흡한 상황이다. 강 교수는 “NGS 검사에서 변이가 발견되더라도 그에 맞는 치료제를 바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정밀의료의 근간인 임상 유전체 통합 DB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체 기반 맞춤형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맞춤형 치료제가 있어도 해당 암종에 대한 시판 허가가 되지 않았다면 현실적으로 환자에게 바로 투여하기 어렵다. 암 변이 유전자 발견으로 정밀 진단만 가능할 뿐 맞춤 치료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정밀 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암 유전체 정보와 임상 현장의 실제 치료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또 다른 암 환자의 맞춤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며 “아직까지 국가 단위의 통합 DB가 없어 유전체 기반 맞춤 치료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밀 의료는 효율적 진단·치료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정부 입장에서는 한정된 보건의료 자원의 최적화된 활용을 실현할 수 있다. 암 정밀 의료의 실현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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